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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폭스바겐을 빼놓기는 어렵다. ‘국민차’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중적인 자동차를 만들어 왔고, 골프와 티구안 같은 모델로 세계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 왔다.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셰와 람보르기니 등도 그룹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런데 세계 자동차 산업을 이끌던 폭스바겐이 최근 심각한 수익성 악화와 구조조정이라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빠른 성장과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전환은 기존 자동차 강자들에게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과연 폭스바겐은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최근 실적과 구조조정 계획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봤다.
영업이익 53% 감소, 숫자가 보여주는 위기
폭스바겐의 경영 상황을 이해하려면 먼저 실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폭스바겐그룹이 발표한 2025년 연간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약 3,219억 유로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2024년 약 191억 유로에서 2025년 약 89억 유로로 53%가량 감소했다. 영업이익률도 5.9%에서 2.8%로 낮아졌다.
매출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익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이는 자동차를 많이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한 수익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의 관세 부담, 포르쉐의 제품 전략 조정에 따른 비용, 환율과 판매 제품 구성 등이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폭스바겐은 비용 절감과 생산 효율 개선을 통해 수익성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이를 곧바로 회사의 붕괴나 파산 위기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폭스바겐은 여전히 연간 약 900만 대의 차량을 판매하는 대형 자동차 그룹이다. 지금의 핵심 문제는 기업이 당장 사라질 위기라기보다 거대한 조직과 사업 구조를 얼마나 빠르게 바꿀 수 있느냐에 있다.
공장은 줄이고 인력은 감축한다
폭스바겐의 구조조정은 말뿐인 계획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는 2024년 말 독일 내 사업 재편 합의를 통해 2030년까지 독일 사업장에서 3만 5,000명 이상의 인력을 줄이고 생산능력도 연간 약 73만 4,000대 감축하기로 했다. 이는 단순히 직원 수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공장 운영과 개발 비용, 생산라인까지 전반적으로 손보겠다는 의미다.
드레스덴 공장에서는 2025년 말 차량 생산이 종료됐다. 다만 독일 공장 전체가 문을 닫거나 군수물자 생산시설로 일괄 전환된다는 식의 주장은 확인된 사실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폭스바겐의 기존 합의는 공장 폐쇄를 피하면서 생산능력을 조정하는 방향이었다.
2026년 9월 발표된 ‘미래 계획 2030’에서는 구조조정 범위가 더욱 확대됐다. 그룹 전체에서 약 5만 명의 인력 조정이 필요하다는 계획이 제시됐으며, 이 수치에는 기존 구조조정과 중복되는 인원이 포함될 수 있다.
회사가 인력을 줄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판매 전망에 비해 생산시설과 조직이 지나치게 크다면 고정비 부담이 커지고, 새로운 기술에 투자할 여력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추격이 무섭다
폭스바겐이 마주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중국 자동차 시장이다.
과거 중국 시장에서 폭스바겐은 오랫동안 강력한 브랜드와 판매망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BYD를 비롯한 현지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과 배터리 기술, 차량 소프트웨어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도 달라지고 있다. 주행거리와 가격뿐 아니라 차량 내부의 디지털 기능, 스마트폰과의 연동, 운전자 보조 기술 등도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 경험이 풍부하더라도 이러한 변화에 늦게 대응하면 시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폭스바겐이 중국 업체들과 협력하고 현지 시장에 맞는 전기차를 개발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중국 업체와의 협력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쟁사의 기술과 개발 속도를 활용해 시간을 단축하고, 현지 소비자의 요구에 더 빠르게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포르셰까지 흔들리는 이유
폭스바겐그룹의 어려움은 대중차 브랜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셰 역시 실적 악화를 겪었다.
포르셰의 2025년 연결 영업이익은 약 4억 1,300만 유로로, 2024년의 약 56억 3,700만 유로보다 크게 줄었다. 전기차 전환과 제품 전략 조정에 따른 비용, 미국 관세 등의 영향이 반영됐다.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도 기대만큼 순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포르셰가 공개한 자료에서 타이칸의 2025년 판매량은 전년보다 약 40% 감소한 2만 5,876대였다.
하지만 판매량 감소를 곧바로 타이칸 단종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전기차 수요와 시장 상황, 포르셰의 제품 전략은 계속 변할 수 있으며, 단종 여부는 별도의 공식 발표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고급 브랜드라고 해서 전기차 시장에서 자동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브랜드의 명성만큼이나 가격, 기술, 상품성,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이 중요해졌다.
폭스바겐의 생존 전략, 답은 체질 개선에 있다
폭스바겐은 생산비를 줄이고 복잡한 조직을 단순화하는 한편, 모델 구성을 정리해 효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 2026년 발표된 미래 계획 2030에는 매력도가 높은 차종에 집중하고 모델 라인업을 최대 50%까지 줄이는 방향도 담겼다.
중국 시장에서는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개발 속도를 높이고, 지역별 소비자 취향에 맞는 제품을 선보이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성공하려면 비용 절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소비자가 선택할 만한 전기차를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고, 소프트웨어와 품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생산라인을 줄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고객이 다시 폭스바겐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무리: 자동차 산업의 왕좌는 영원하지 않다
이번 폭스바겐의 위기를 살펴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과거의 성공 공식이 미래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역사와 뛰어난 제조 기술, 강력한 브랜드를 갖고 있어도 시장의 변화에 늦게 대응하면 위기는 찾아올 수 있다.
특히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성장은 기존 자동차 기업들에 중요한 경고가 되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엔진과 차체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가격 경쟁력, 개발 속도까지 모두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폭스바겐에는 여전히 세계적인 생산 기반과 브랜드, 기술력이 있다. 구조조정이 실제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진다면 다시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비용을 줄이는 데만 집중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내놓지 못한다면 어려움은 계속될 수 있다.
결국 폭스바겐의 미래를 결정할 것은 얼마나 많은 공장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변화한 시장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자동차를 만들어 내느냐일 것이다. 한때 자동차 산업의 기준을 만들었던 기업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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